이 글은 일기에 대한 일기 (opens in a new tab)를 쓰던 도중 떠오르게 된 생각을 확장시키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현재 레퍼런스 스타일은 여러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으며 후에 하버드 스타일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수정 기록 및 관련 글 추가
- 2023-01-15: Philippe Lejeune의 일기 연구 추가
- 2023-01-19: Lejeune의 설명 추가
- 2023-01-20: 일본 일기를 아시아 일기 섹션에 추가
- 2023-01-21: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추가
- 2023-01-22: 블랑쇼의 일기에 대하여 추가
On Diary
도대체 다들 언제 일기를 쓰는 걸까? 일기라는 것은 글쓰기 중에서도 가장 주관적인 글쓰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문학적 글쓰기와 다르게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면서도 정해진 구조나 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만의 사람이 있다면 수만의 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서 소수의 스타일과 구조가 존재하는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혹은 가상의 존재에게 전하는 편지가 될 수 있으며 또한 현재의 혹은 미래의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이 될수도 있다. 무한한 스타일이 존재하며 어떠한 것도 일기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다. 단 한가지의 제약이 있다면 이것은 분명 주관적인 있었던 일 즉 사진과 같이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사실들을 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기라는 것은 언제부터 쓰여지기 시작했을까. 그림의 형태 또한 일기에 포함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동굴 속에서부터 이미 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손바닥으로 내가 있었음을 동굴벽에 남긴다. 각자 다른 손바닥처럼 그것은 나를 상징하고 기록으로 누군가에게는 전하는 메시지가 된다.
누군가 물었던 적이 있다. 만약 누구에게도 보여지기 싫다면 왜 작업을 해야하냐고. 만약 현재의 나만을 위한 어떠한 작업 혹은 기록이라면 쓰여짐과 동시에 사라져도 그 또한 괜찮은 것이 아니냐고. 나는 물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싶은 것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작업은 의미를 잃는것이 아니냐고. 심지어 일기란 것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제 3자가 되었든 후대의 사람들이 되었든 미래의 내가 되었든, 전달 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도시 속에서 온라인 속에서 모두가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것에 익숙하다면 그러한 감정, 남이 있다라는 관점은 사라지기 어려우며 나 혼자만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기는 지속적으로 쓰여지고 있으며 블로그와 sns와는 차별된다. 종이로 쓰여지는 일기에는 개인의 속마음과 비밀들이 담긴다. 왜 그런것 일까? 읽히기를 원하는 비밀인가 아니면 파괴되는 기록인가. 일기는 밖으로 소리내어지는 상징화되는 글자화되는 속마음일까 아니면 읽혀지지 않는 글자의 개인화일까.
일기에 대한 연구
일기의 역사를 알아내기란 그렇기에 어려운 일이다. 많은 수의 일기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쓰여졌고 본인 혹은 가족 범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Batsheva Ben-Amos와 Dan Ben-Amos은 일기에 대한 모음집 The Diary: The Epic of Everyday Life을 통해 뉴욕타임스 (opens in a new tab)에서 2018년 1월 4일에 소개한 시베리아의 한 소비에트 수용소에서 1941년부터 42년에 걸처 쓰여진 일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기에 담긴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12 Olga M Ranitskaya, 라니츠카야는 펜과 종이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던 소비에트 수용소 굴라그에서 그녀의 감정을 담담하지만 진솔하게 그려 넣는다.3 그녀의 일기는 발각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압축적이고 추상적으로 그녀의 다른 자아로서 선으로 이루어진 케릭터에 그려넣는데, 혁명 이전의 만화 스타일로 그려진 각 페이지는 굶주림이나 공포와 같은 주제를 묘사하거나 특정한 감정적 순간들, 혹독한 기후에서 코트를 잃는 비극에서부터 애완동물을 위한 암늑대를 찾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종종 감정적인 순간을 묘사한다. 그녀의 일기는 그런 의미에서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겪었던 경험과 그에 따른 감정들, 그녀가 그리워하는 것들과 그녀가 다시 보고 싶은 아들까지. 하지만 일기의 형태가 언제나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연구에서 일기는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을까? 현재 동향에서 일기는 사생활 역사의 문맥 안에서 "일상"이나 "친밀"의 보고가 아니라 개인의 자의식이나 친밀감의 사적 영역을 만드는 일상의 실천으로 해석되고 있다.4 일기는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묘사하지만 일기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위한 기록, 즉 당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목격했으며, 무엇에 관해 썼다는 것을 논평하기 위해 일기를 읽기보다,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달력이라는 시간의 격자 내에서 일기 서술가들이 인생, 사생활을 서술한 작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Paperno은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그들의 글을 존재하지 않는 이론적 작업 위에서 연구하는 것보다 수행을 통해서, 스스로 자의식적이고 반성적인 수행적 글쓰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5
역사 속 일기 (영국)
댄 돌 (Dan Doll)의 글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일기의 표준을 조사하는데 대략 16세기까지의 일기는 개인의 이야기라기 보다 정신적 개인 수양에 가까웠다고 분석하며 Evelyn과 Pepys의 글에 (각각 1818년과 1825년)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널리 출판된 일기의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16세기 이전의 일간 기록들은 대체로 집단을 위한 글이었다. 예시로 로마에서 많은 가정이 장부 혹은 가정의 이벤트를 기록한 연대기를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들은 정부 혹은 커뮤니티를 위한 것이었고 개인적 일기가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많은 자료들이 소실된 지금으로서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며 과연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표준적 형태의 일기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더욱 힘들다. Robert Fothergill의 경우 일기 쓰기는 번창하는 자율적인 활동이며 다른 규칙적인 글쓰기 습관의 부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기는) 여러 가지 전-일기 습관이 구성 요소를 초과하는 형태로 결합된 것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6
Saint Anthony the Great
4세기 일기 형태의 기록이 Saint Anthony에 의해 행해졌다.
그는 죄에 대한 보호책으로 다음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행위와 영혼의 움직임이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에게 말할 것처러 기록하고 적읍시다. 만약 그것들을 다른이들이 알게 될 것이 몹시 부끄게 느껴진다면럽다면, 죄를 짓는 것을 멈출 것이며, 심지어 어떤한 사악한 생각도 멈출 거야할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을 보이고 싶은사람, 혹은 그가 죄를 지었음에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짖지 않은 척하지 않은 사람은?… 우리 동료 수도사들의 눈 대신에 서면 설명이 우리에게 봉사하도록 하여, 우리의 죄를 누군가에게 보인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글에서 얼굴을 붉히며, 그로 인해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원수의 올가미를 짓밟기 위하여 몸을 주조하도록 하십시오.7
이 설명에 따르면 중세의 일기와 비슷한 형식의 글쓰기는 신앙고백에 가까웠다. 16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매우 넓게 행해졌던 일기의 수행은 정신적 일기로 최근 학자들이 “청교도 Puritan” 일기라고 부르는 형태를 띄고 있다.8 하지만 이러한 형태는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라지기 시작한다.9 즉 일기는 그 스스로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으며 문학과 출발 기술의 발달에도 영향을 받아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르는 일기의 형식은 3개의 단계로 나뉘어 진다.10 영국에서 일기를 쓰는 행위는 18세기 이후에 개인이 의미의 중심이 되는 사상에 의해 일기가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11 17 초반 일기는 크게 정신적인 자가 관리와 집중을 볼 수 있다. 18세기에 들어서게 되면 자가-향상에 대한 지속적인 집중과 함께 세속적 세상에 대한 관찰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들은 마침내 19세기가 되어 더 커다란 의미의 공공 공간을 주제와 관객으로의 관심이 늘어나게 된다.
19세기의 일기는 개인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함께 출판 기술의 발달로 19세기 초반 혹은 그보다 더 일찍 개인의 일기가 출판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각하게 됨과 동시에,12 일기는 더이상 비밀 속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공의 다큐먼트로 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19세기 초반 낭만주의의 일기 서술가들은 일기를 새로운 역사가의 관점으로 일기를 접근했다. Delacroix는 1824에 그의 일기가 "내가 느끼는 것의 역사"라고 적었으며, 13 19세기 후반, 긍정주의자들은 일기를 과학적 자가-관찰, 물질과 정신의 연결, 외부 상황과 감각에 대한 글쓰기를 추구했다. 14
일기 전문가 Philippe Lejeun의 경우 Samuel Pepy의 일기 쓰기를 19세기에 낭만주의의 시대가 오기까지 시작하지 않았던 17세기의 진정한 모던 일기 쓰기라고 이야기 한다.
아시아에서의 일기
물론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영국 안으로 혹은 유럽의 환경 내에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인 나라들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은 각각 다른 형태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기라는 개인 문화를 꽃피워 왔다. 일본, 중국, 그리고 아랍의 국가들에서 개인적 기술의 형태를 띄는 날짜별로 종합되는 기록은 11세기부터 발견된다. 이 중 일본의 경우 중세시기, 10세기 부터 보이고 있는 일기의 흔적과 함께,15 계속 이어지는 모던까지의 오랜 일기 역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 예시로:
- Don- ald Keene, Modern Japanese Diaries: The Japanese at Home and Abroad as Revealed through Their Diaries (New York: Henry Holt, 1995);
- Marilyn Jeane Miller, The Poetics of Nikki Bungaku (New York: Garland, 1985);
- Fujiwara no Nagako, The Emperor Horikawa Diary (Sanuki no suke nikki), trans. Jennifer Brewster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77);
- Herbert Eugen Plutschow, “Japanese Travel Diaries of the Middle Ages,” Oriens Extremus 29, nos. 1–2 (1982): 1–136;
- Edwin O. Reischauer, “The Izayoi Nikki (1277–1280),”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10, no. 3–4 (1947): 255–387;
- Mamiko Suzuki, “Between the Public Persona and the Pri- vate Narrator: The Open Space of Kishida Toshiko’s Diaries (1891–1901),” U.S.-Japan Women’s Journal 35 (2008): 6–25;
소비에트에서의 일기
조지 오웰 (George Orwel)의 1984의 주인공 Winston Smith가 일기를 작성하는 장면이 보여주듯, 전체주의 체제에서의 감시는 일기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을 넘어, 개인으로부터 시간, 공간, 그리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도구인 종이와 연필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전체주의 안에서 일기라는 형식과 수행은 존재하기 어렵다.16 소비에트에 의한 러시아가 끝나고 소비에트 아카이브에서 일기를 소장하기 시작했을 때 예상과 다르게 일기는 그 시기에 매우 인기있는 장르였던 것이 밝혀졌다. 많은 소비에트 일기는 특이하게도 자기 반성적이었지만 개인적 목적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17 Jochen Hellbeck은 소비에트 시기의 일기와 Winston Smith의 일기를 비교하며 일기의 “나”는 권력에 의해 전파된 목표와 가치에 대해 등을 돌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초기 소비에트의 일기들은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질서에 자신을 쓰고 싶은 충동을 드러낸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혁명적 공동의 대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 되는 자신을 역사적 주체로 실현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일기 쓰기는 소비에트 정권 아래서 행해진 본질적으로 모던적 주관화의 행동 강력 아래서 행해진 만들어지게 될 새로운 세상 그리고 새로운 인간 형태를 위한 적극적 혁명 참여의 수행적 실현이었다. 18 이렇게 혁명 전과 혁명 후의 소비에트의 일기 형태는 크게 변화했다.
다이어리-쓰기는 사회의 특권층을 추구하는 일기 쓰기에서 보편적인 읽고 쓰기, 교육,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기록이라는 민주적인 의제로 옮겨갔다. from diary-keeping as a pursuit of privileged members of society to a democratic agenda of universal literacy, schooling, and recording of the self. 19
이러한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Stepan Podlubny의 일기일 것이다. 일기를 시작할 당시 18세 인쇄소 견습생이었던 그는 2년전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서 집단화 운동의 치명적인 물결을 피해 도망쳤다. 그의 아버지는 착취와 이기적인 이익 추구 혐의로 쿨락 농민으로 추방되었고 이에 스테판은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는 모스크바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고 주장하며 그는 공산주의 청년 조직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 시기 모스코바는 광란적인 수색이 휩쓸고 있었고 여러가지 제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도시 생활을 진정한 산업 노동자와 교육받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그의 뿌리 깊은 쿨락 "심리학"이라고 믿었던 것을 벗어나고자 했다.20 작가가 되길 꿈꾸던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가입한 문학 모임에서 나중에 출판하길 꿈꾸던 자서전을 위한 재료로써 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출판을 목표로쓰여졌던 그의 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유일한 친구”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이용되기 시작한다. 그는 더이상 문학 모임에서 그의 일기를 읽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의 일기의 존재를 숨기기 시작했다.
심해지는 규제 속에서 일기를 쓰는 행위는 점점 더 사라지거나 숨겨졌고 일기 쓰기는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찾아왔으며 소비에트 해빙기 (1953-64)의 상징적인 문학 형태가 되었다. 여러 작가들이 소설을 버리고 일기 형식의 글쓰기에 집중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스탈린의 시대에 뿌리를 두고 네오 낭만파(50년대)에서 번성한 개성의 우월성을 표현했다. 일기는 하나의 역사적 균열 속에서 새로운 진리를 확립하기 위한 수행으로 삶의 불확실한 미래와 자기 정의에 대한 표현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21
일기의 특징
일기는 글쓰기보다 앞서서 삶의 방식이다.각각의 방식의 삶이 있듯이 각각의 일기의 방식이 있으며 우리는 일기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가정할 수 없다. Lejeune가 주장한 것처럼, “일기는 마치 그물 짜기와 같기 때문에 단단한 부분보다 더 많은 빈 공간을 포함하는 더 촘촘하거나 느슨한 링크의 그물“이다.22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 문학 비평가들과 역사가들은 주장하듯 일기는 경험이나 사실에 대해 직접적인 접근을 제공하는 것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3
일기는 이것은 또한 디지털로 이동된 현재의 디지털 문화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디지털과 소셜미디어로 이어지는 날짜별로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의 수행은 비록 개인의 공간에서 공공의 가능성을 품은 개인, 그리고 개인과 공공성을 동시에 지닌 형태로 변화했지만 그럼에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글에서 나타나는 교정이나 수정 혹은 초안과 같은 것들은 숨기는 것과 반대로 일기는 그 모든 것들을 간진한다는 것이다.24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일기는:
“(솔찍한 일기라는 의미에서) 라는 것은 불연속적인 것이다. 수많은 틈과 암시들로 가득하다. “the true authentic diary (meaning an honest diary) is . . . discontinuous, full of gaps [and] allusive.”21
Maurice Chapelan의 선집(1946), Georges Gusdorf의 분석 (1948), 또는 Michèle Leleu(1952)와 Béatrice Didier(1976)의 서문을 읽어보면 일기에 대한 연구의 주제는 전반적으로 비판적 담론을 의학화하거나 도덕화하는 것을 통해 개인 일기는 질병이나 증상처럼 취급된다. 그것은 성격학(Chapelan, Leleu) 또는 정신분석학(Didier)의 관점에서 연구되거나, 성격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평가된다(Gusdorf). 역사적으로 19세기와 카톨릭 교회에서 스스로를 단속하고 제한하는 방식과 반대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치료에 대한 저항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디지털 상의 글들이 과연 일기일까? Blog와 Diary는 과연 같은 것일까? Blog가 아무리 개인적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짧은 단상들에 가깝다고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Blog가 아무리 일기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해도 공개되고 출판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그 글들은 진솔성을 담기 힘들다. 그러므로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autobiography의 형태로 보아야 할 것이며 일기와는 별도로 분석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좁은 관점으로 일기를 분석한다는 것은 일기의 표준적 포맷을 정해 놓고 그 밖으로 벗어난 모든 것들을 놓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일기란 것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질문은 일기가 문학적 미학적 지리에서는 어디에 위치하는 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Paul Ricoeu와 Gérard Genett 내러티브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Philippe Lejeun의 글이 참고가 될 것이다.25
Lejeune은 자서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그의 나이 50세 정도부터 일기를 중점적으로 폭 넓은 연구를 지속한다. 예를들어:
- “Auto-Genesis: Genetic Studies of Autobiographical Text”에서 그는 자서전과 (불가능해 보이는) 일기에 관한 연구를 비교했으며,
- “Composing a Diary”에서는 그가 자서전 형태를 버리고 일고 옮겨간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는 자서전은 유토피아를 통합하는 시도라고 이야기하며 일기는 변화와 성장을 허용한다고 주장한다.
- 또한 “How Do Diaries End?”에서 그는 일기란 결코 끝나지 않는, 심지어 글쓴이가 죽은 이후에도 끝이 없는 글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 ”What is a Diary”를 통해 “Composing a Diary”에서 시작한 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간다.
“Composing a Dairy”란 에세이에서 Philippe Lejeun은 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공책에 적거나 별개의 종이 위에 쓴뒤 모으기도 한다. 이 때 모아진 공책은 환상 속의 내러티브 아이덴티티로 최소한의 단일성을 구성하며,26 낱장에 쓰여진 하루에 대한 혹은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한 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한 묶음으로 공책 혹은 책이라는 단일성이 구성되는 순간 일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일성 속에 지속성과 비지속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제노 Zeno의 파라독스를 반박한 베르그송과 숙고를 시로 표현한 Valéry의 시를 통해 이러한 지속성과 비지속성은 확장될 수 있다. 만약 낱장으로 이어진 공책이 끝났을 경우는 어떨까? 혹은 중간에 갑작스럽게 끊어지는 일기는 어떨까? 이러한 비지속성은 일기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역사적 특성적 연구를 통해 Lejeune은 네가지 일기의 기능을 정리한다.
- 표현 일기의 표현 기능은 다시 표현의 방출 혹은 발산과 표현의 전달 혹은 소통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표현의 발산은 파괴의 충동과 닮아있으며, 무엇을 쓴다는 것은 쓰여진 것과 스스로를 분리하여 스스로를 정화하고 정리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더 극적으로 끌고 갈경우 이러한 기능은 다시 일기 자체를 파괴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두번째 표현의 기능인 소통의 경우 “친애하는 일기에게” 혹은 “친애하는 키티에게”로 시작하는 안나 프랭크의 일기가게예시가 될 수 있다.
- 반성 반성의 경우도 두가지 기능으로 세밀화시킬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를 분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고찰하는 것이다. 반성은 자주 표현과 기억의 글쓰기 기능과 연관되며 주로 인생의 위기 혹은 갈림길에 쓰여지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 시간의 동결 종이 위에 기억을 쌓아 올리고 삶의 경험을 보관하고 흔적을 축적하여 잊어감을 막는 기능으로 일기의 이러한 기능은 삶 자체에 부족한 일관성과 지속성을 보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기를 멈춘다는 것은 실패와 동일하고 일기를 파괴한다는 것은 완벽한 실패에 해당한다.
- 글쓰기의 즐거움 누군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또한 그것이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꼭 일기쓰기만 그러한 것은 아니며 다른 글쓰기의 형태들도 이러한 즐거움을 대신할 수 있다. 기억이 중요한 기능이 아닐경우 일기를 중지하는 것에 시간의 동결 기능처럼 큰 의미가 있지 않다.
디지털과 일기
글 “The Diary on the Computer”에서 블로그에서의 일기를 연구한다. 종이에 손으로 혹은 타자기로 쓴 일기와 컴퓨터로 스크린에 쓴 일기는 무엇이 다를까. 스크린에 쓴 글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출판되는 글 처럼 그 수정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스크린 위에 쓰여지는 일기는 쉽게 지워지고 고쳐지며 그 흔적을, 적어도 스크린 위에는,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은 일기가 가질 수 있는 네개의 기능에서 두번째와 세번재 기능인 반성과 시간의 동결 기능을 손상시킨다. Lejeune의 말에 따르면 역사성의 가치를 손상시키며, 어리석었던 순간들, 어색함과 나쁜 믿음의 순간들은 새로 낳은 달걀처럼 "신선함"에서 그 가치를 얻는 것처럼 새로움이 사라지고 감추어지며 전체의 목적을 망친다.
“신선함”을 망치는 것과 함께 스크린 위에 쓰여지는 일기는 사적인 공간의 해체를 낳는다. 종이에 쓰여져 쉽게 어딘가에 감추어질 수 있는 공책으로 이루어진 일기와 다르게 스크린위에 쓰여지는 일기는 사생활이 깨어지기 쉽다. 스스로 온라인에 공개를 하거나 혹은 공유되는 컴퓨터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는 것이다. Philippe Lejeune이 보기에 온라인에서의 일기는 개인적인 기록에 종이보다 더 어울렸다.
Online, “the diary can fi nally breathe, stretch out on a chaise lounge, and relax.27
Footnotes
Footnotes
-
Ben-Amos, B. and Ben-Amos, D. (eds) (2020) The Diary: The Epic of Everyday Life . Revised edition. Bloomington, Indiana: Indiana University Press. ↩
-
Sohlman, E. and MacFarquhar, N. (2018) ‘A Diary From a Gulag Meets Evil With Lightness’, The New York Times [Preprint]. Available at: https://www.nytimes.com/2018/01/03/arts/design/gulag-museum-moscow-diary.html (opens in a new tab). ↩
-
Ariès and Duby, eds., A History of Private Life 3:165, 255, 330-36, 380-92, and 4:498-502. ↩
-
Paperno, I. (2004) ‘What Can Be Done with Diaries?’, Russian Review, 63(4), pp. 573. ↩
-
Robert Fothergill, Private Chronicles: A Study of English Diarie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4) ↩
-
Deferrari, Roy J., ed. Early Christian Biographies. Trans. Roy J. Deferrari, John A. Lacy, Sister Mary Magdalene Muller, O.S.F., Sister Mary Emily Keenan, S.C.N., Sister Marie Liguori Ewald, I.H.M., and Sister Genevieve Marie Cook, R.S.M. Washington, D.C.: Catholic U of America P, 1952, 185. ↩
-
이 형식의 일기는 한번 찾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형태로 씌여졌을까? ↩
-
Findlay, “Ralph Thoresby the Diarist.” ↩
-
Ben-Amos, B. and Ben-Amos, D. (eds) (2020) The Diary: The Epic of Everyday Life. Revised edition. Bloomington, p. 76. ↩
-
Felicity Nussbaum, The Autobiographical Subject: Gender and Ideology in Eighteenth-Century England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9), 28. ↩
-
Ben-Amos and Ben-Amos, The Diary (2020), 77. ↩
-
Alain Corbin, "Backstage," in A History of Private Life, vol. 4 From the Fires ofRevolution to the Great W Perrot (Cambridge, MA, 1990), 499. ↩
-
더 보기 Irina Paperno, Chernyshevsky and the Age of Realism: A Study in the Semiotics of Behaviour (Stanford, 1988), 41-53. ↩
-
Donald Keene, Seeds in the Heart: Japanese Literature from Earliest Times to the Late Sixteenth Centu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8. ↩
-
George Orwell, 1984 (San Diego: Harcourt Brace Jovanovich, 1984), 7–8. ↩
-
Ben-Amos, B. and Ben-Amos, D. (eds) (2020) The Diary: The Epic of Everyday Life. Revised edition. Bloomington, 348. ↩
-
Ibid, 349. 이러한 예시는 모스코바 근처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던 Vera Pavlova나 젊은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Anatoly Ulianov의 일기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소비에트 5년 계획이란 의제 속에 자신들의 삶을 녹아들게 했는가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것은 Jochen Hellbeck, Revolution on My Mind: Writing a Diary under Stali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67-68. ↩
-
Ibid, 352. ↩
-
Ibid, 165-222. ↩
-
Lejeune, P. (2009) On Diary. Edited by J. D. Popkin and J. Rak. Translated by K. Durnin. Honolulu: Published for the Biographical Research Center by the University of Hawaiʻi Press (Biography monographs), 153. ↩
-
Paperno, I. (2004) ‘What Can Be Done with Diaries?’, Russian Review, 63(4), pp. 565. ↩
-
Philippe Lejeune, On Diary, ed. Jeremy D. Popkin and Julie Rak, trans. Katherine Durnin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9), 170. ↩
-
McNeill, Laurie (Winter 2010). "Rethinking the Diary" (opens in a new tab). Canadian Literature (207): 153–154.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7 August 2014. Retrieved 4 April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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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아이덴티티에 대한 아이디어는 Paul Ricoeur가 주장했으며 그의 책 Time and Narrative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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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추가 필요 #citeneeded ↩